
A Low Whisper 2025
About Project
“A Low Whisper” is an installation-based art project that seeks to recover and reexamine the traces of local places and the lives of ordinary people who have been overshadowed by rapid urban development and social change.
The former Jeonbang and Ilsin Textile Factory sites and Balsan Village in Gwangju are spaces where Korea’s modern history—colonial occupation, industrialization, women’s labor, and urban regeneration—intersects in complex layers. These are not merely physical sites but symbolic landscapes where collective memories, emotions, and the imprints of an era’s struggles and solidarity coexist.
Today, however, these spaces are quickly disappearing under the banners of “redevelopment,” “urban regeneration,” and “economic revitalization.” While certain structures are selectively preserved under the logic of capital, the memories of everyday life—the emotions, stories, and people tied to these places—are fading away. The project focuses on these faint and forgotten voices, exploring how art can function as a tool for social memory and record.
Rather than simply preserving what is vanishing, A Low Whisper asks a deeper question:
What—and how—do we remember and record?
By examining the structures of memory within their social context, the project expands them into spaces of sensory experience and collective dialogue. It is both a method and a practice of reawakening overlooked voices and landscapes, weaving them into new narratives that speak quietly, yet powerfully, to our present.
『A Low Whisper – 낮은 속삭임』은 급속한 개발과 변화의 흐름 속에서 소외되고 있는 지역의 흔적,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목소리를 복원하고 재조명하기 위한 설치 기반 예술 프로젝트다.
광주 발산마을과 전방·일신방직 공장 터는 식민지 시기, 산업화와 여성노동, 그리고 현대의 도시 재생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근,현대사가 복잡하게 중첩된 공간이다.
이 지역은 단지 물리적 장소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기억과 정서가 응축된 상징적 풍경이며, 한 시대의 삶과 고통, 연대가 고스란히 새겨진 집단적 무의식의 지층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이 공간들은 '재개발', '도시 재생', '경제 활성화'라는 이름 아래 빠르게 소멸되고 있다. 일부 상징적 건축물은 보존-이 또한 철저히 자본의 논리로-되지만, 일상과 감정이 깃든 장소와 사람의 기억은 기록되지 못한 채 사라진다.
더구나 개발의 담론에서 조명 받지 못한 ‘사소한 존재’들은 역사로부터 소외되기 쉽다. 『A Low Whisper』는 바로 이러한 잊혀지는 기억, 낮은 속삭임에 주목하며, 예술이 사회적 기록의 장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사라져가는 건축물과 공간의 흔적을 보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기억하고 기록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질문에서 출발해, 기억의 구조와 사회적 맥락을 복합적으로 탐구하고, 그것을 감각적 경험과 사회적 대화의 장으로 확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예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놓치고 있는 목소리와 풍경을 환기시키고, 그것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는 방법론이자 실천이다.

Artist Note
Life is always smaller than words, and space often deeper than time.
This exhibition begins by listening to the places we have passed those too worn to restore, too ordinary to notice,where the faint traces of living still linger.
A Low Whisper is both a trace and an echo,a way of hearing what history could not fully say.
Inside the old warehouse of Balsan Village,dust gathers on the concrete, and the quiet air carries the weight of a time once filled with labor and breath.
Among these remnants hang fragments of cotton cloth not painted or printed, but pressed and rubbed by hand,each bearing the texture of touch, each holding the rhythm of memory. What remains on their surface is not an image, but the slow record of gestures and silence.
As the viewer moves through these layers, they pass between voices that are no longer heard, and through spaces where sound once dwelled.
In this act of movement, they enter the memory of others—the faint, persistent murmur that binds past and present together.
Here, the exhibition becomes not a display, but a structure of sensing. It asks the body to remember through perception to inhabit memory rather than merely observe it.
Art, in this way, does not resolve questions. It repeats them quietly, allowing them to settle again in the folds of experience. The city continues to change faster than memory can endure. Spaces that once held the grain of daily life are vanishing, and the rhythm of place grows thinner with each transformation.
Yet memory is not the past; it is the present condition that allows us to live meaningfully within time.
A Low Whisper speaks within that fragile continuity,
not to mourn what has disappeared, but to make it perceptible again to keep alive the texture of shared remembrance.
Through this exhibition we ask:
Among all that fades, what do we choose to hold?
How can we remain together, even as things fall away?
And if the whisper returns will we still be ready to listen?
삶은 언제나 말보다 작고, 공간은 종종 시간보다 더 깊다. 우리가 지나쳐온 자리들—돌이킬 수 없이 낡았거나 너무 사소해서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것들—그곳에 귀 기울이는 일이야말로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A Low Whisper – 낮은 속삭임] 은 흔적이자 잔향이다. 발산마을의 오래된 창고에 들어서면, 언제부터인가 떨어져 쌓인 돌가루와 구조에 달라붙은 먼지들이 여전히 시간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공간 안에 조각나고 이어붙여진 광목천들이 또다른 구조를 만든다. 조용하고 무거운 공기를 뚫고 귓가에 도달하는 건,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 낮고 반복적인 말들이다. 말하자면 이 전시는 ‘지워진 것들을 복원하는 전시’가 아니라, ‘들리지 않는 것들의 방식으로 다시 말하는 전시’다.
기억은 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그것은 직선이나 도식이 아니라 굴곡지고, 느리고, 사람의 속도와 감정을 따라 펼쳐지는 구조다. 이 전시의 설치 작업들은 그런 기억의 구조를 닮아 있다. 표면에 새겨진 건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손 끝으로 수 없이 문질러 새긴 감각과 시간의 기록이다. 당신은 그 사이를 지나며,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기억에 접속한다. 기억되지 못한 말들, 목소리 를 잃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틈에서 들려오는 낮은 속삭임.
여기서 ‘전시’는 단지 작품을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각의 층위를 직조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이 구조 안에서 당신은 기억을 다시 살아내는 사람으로 참여한다. 그것은 기억을 완성하는 일이 아니라, 조용히 맞물려 들어가는 일이다.
질문은 이어진다. 이 전시는 하나의 응답이 아니라, 오래된 질문을 다시 천천히 반복하는 방식으로 감각속에서 새겨진다. 그렇게 반복되는 속삭임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그 자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리고 지금, 이 작업은 현재의 시간 속에서 다시 읽힌다. 우리는 여전히 도시의 풍경이 바뀌는 속도에 익숙해지고 있고, 삶의 결이 담긴 공간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억은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현재의 조건이다.
[A Low Whisper]는 예술이 그 틈에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한다. 지워지는 기억 앞에서 예술은 단순히 애도하거나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감각의 방식을 달리하여 잊히지 않게 하는 구조를 만든다. 그것은 공동체를 유지하고, 정서의 연속성을 지켜내는 작업이다.
지금, 나는 이 전시를 통해 묻는다. 다시 나에게 그리고 이 앞에 잠시 머물다 갈 당신에게,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어떻게 함께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 조용한 속삭임이 다시 들린다면, 우리는 그 기억을 감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A Low Whisper, The Silence That Speak Single Channel Video 04:30
Critic
예술에서 사회로, 공존의 감각
예술의 의미가 점차 고도화될수록, 그것과 그것이 속한 사회라는 틀 사이의 관계 또한 점차 다단하고 복잡해짐은 자연스럽다. 그러한 관계의 양상 가운데에서 예술은 다른 한편 제 제도의 측면에서 이른바 ‘순수한’ 자율적 범주에서 벗어나 예술은 비로소 어떤 수행의 단초이자 계기로서의 자기 위상을 스스로 확충케 된다. 다만 예술의 역사에서 이와 같은 차원은 예술적 책무의 당위에 관한 상반된 견해를 불러일으키고, 따라서 예술은 예술로서의 명제 분포를 특정한 시대의 요구에 따라 조정해 온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이념의 상충은 역시나 지난한 절차를 거쳐, 심지어 현재에도 진행 중인 근대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립 구도와 제 층위를 중첩한다. 그로 인한 구조적 긴장은 그 구체적인 국면에서 정치·문화·경제 등 사회 전반의 부문에 잔존하며, 각기의 체제가 목표하는 가치는 개별 구성원, 그들 삶의 양식을 결정짓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는 ‘잘함’과 ‘바름’, 이로부터 ‘옳음’이나 ‘진리’, 나아가 ‘존재함’의 방식에까지, 하나의 체계를 성립도록 하는 필연적인 조건으로서 어느새 모두에게로 확산한다. 이러한 일련의 전개는 예술의 사회적 실천을 둘러싼 논의를 지속적으로 갱신하고, 더불어 예술을 향한 안팎에서의 존재론적 토대를 끊임없이 재구성해 내어야 함을 촉구한다. 예술은 그렇듯 자신의 개념을 재귀적으로 확장해 왔으며, 주체적 발화를 통해 무언가를 전파하는 일종의 사회적 매개 역할을 예술은 동시대에 요구되는 미적 형식으로 혁신하려 한다.
최원규의 작업은 이상의 문맥에서 존재의 현전, 그 근원의 구조를 조명하는 사유의 실천이라 할 수 있을 테다. 그는 사회라는 체제 내에 깃든 소외와 침묵의 흔적을 포착하고, 이로써 작가는 권역의 문화와 감수성을 축조하는 구체의 서사와 조응하며, 그것의 출현 과정에서 집적된 잠재 기억의 층위를 감정 공명의 차원에서 탐색한다. 예술은 이렇듯 최원규의 사유 체계에서 합의된 공동체 구성원으로서의 주체, 이를 중심해 구성된 세계의 인지, 그리고 해당의 지적 작용으로부터 발현된 오늘날 실존의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돌이키게 하는 주요한 계기로 작동한다. 그가 행하는 소위 ‘정치적’이라 할 법한 담론적 범주의 차용은 다시금 예술과 사회의 상호성을 강화하면서도 규범 재편 가능성의 모색을 창출해 낸다. 그러한 작가의 예술 시도란 자본을 향한 유물론적 관점으로 사회의 물질적 생산 원리에서 구축되는 산업적 토대–생산과 소비, 수요와 공급, 축적과 분배 등의 상호 구도로 점철된–인 경제적 ‘하부구조(substructure)’가 결정하는 의식 형성과 제도 운용의 질서–게슈탈트(gestalt)적 개념으로 점철하는 철학적 ‘상부구조(superstructure)’와 같은–를 다시금 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미적 형식의 활용에 가까워도 보인다. 이러한 작가적 태도이자 접근의 경로는 종국엔 예술을 이들 상하의 공공 구조를 나름의 방식으로 이어내는 성찰의 장으로 전환함으로써, 개인과 집단의 시스템을 구성하는 물질적이고도 형이상학적인 틀의 성립에 유효한 균열을 촉발한다. 말인즉슨, 최원규에게 예술은 그 자체로 현실을 다중화하고 새로운 연대를 위한 방법론의 재건을 실현하는 당대 표상적인 매체로서의 의미를 이루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하여 작가는 지역의 역사와 연관한 내러티브의 상징적 표현을 구현하면서, 작품으로 하여금 그것이 대중의 삶을 지향하고 있음을 밝히도록 하는 데에 퍽 심심한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테면, 부산 일대에서의 작업 〈숨–귀환 Breath–The Way Back〉(2020)의 경우, 일종의 순회형 전시의 전략을 채택하는 것으로 시민들과의 소통을 위한 상황을 한층 직접적으로 조장한다거나, 대구예술발전소에서의 작업 〈Oblivion; Imprinted–망각의 각인〉(2022)의 일환으로 선보인 안무 협업 퍼포먼스와 거울 반사 프로젝션 기법을 극적인 연출 및 가상 현실(VR) 기록을 통한 예술 향유의 기술적 버전을 제안한 형태, 또는 대만 가오슝 Pier 2에서의 작업 〈And, It Last〉 Part 2(2024)에서 관객에게 낙서라는 행위로 작품을 완성하기에 명확한 소임을 수행하게 한 관객 개입형 인터랙티브 프로세스는 자리의 마련이라는 장치로 ‘관람’의 소극적 주체를 ‘참여’의 주체적 주체로 격상하는 효과를 활성화한다. 이때 관람자는 작업의 일부로 편입되어 창작 집체의 일원으로 자연스럽게 연동하며, 이로 인해 기존에 지속된 권위의 위상은 마찬가지로 자연스럽게 전복된다. 그처럼 최원규는 철저한 감각의 층위에서 예술을 발화하는 것에서 사회 구조 내에서 구성원 간의, 나아가 사회와 예술의 관계를 개편하는데, 그와 같은 인식적 층위에서의 쇄신은 로컬리티 기반의 정서에 대한 깊고 너른 연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 리서치의 핵심을 도맡는 것은 바로 주민들의 생활, 그 자체라 할 수 있을 개인의 일화다. 특히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동의 지점에서 잊힌 인권의 지평은 선박 수리 단지 내의 공장에서 채집한 쇳가루 부산물로 환경에 관한 상징적 물성 이미지를 펼친 〈Breath–The Forest of Oblivion〉(2020) 작업이나, 물성 이미지의 형식으로 기록한 〈Breath–Lifescape〉(2020–) 연작의 경우, 일상의 터전에서 실제 사용했던 현장의 물건(object)을 끌어들인 〈Oblivion; Imprinted–망각의 각인〉(2022)에서의 장판 작업이나 그 흔적의 파편을 전유한 〈And, It Last〉 Part 1(2024)에서의 설치 조형 작업은 단순 변용을 초월해 물질과 기억이 교호하는 양상을 시각화한다. 그처럼 최원규는 어떠한 이유로든 사라져 버린 이들 존재를 경계의 포털에 소환함으로써, 지정학적인 공동체의 조직을 시대라는 명목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인간 삶의 보편적 공감의 상징적 매체로 승화해 낸다.
결국 최원규의 작업은 망각된 삶의 편린에서부터 출발해 그 원형을 복기함으로써 획득하고자 하는 감응적 재현으로 귀결한다. 해당 과정의 실현을 위하여 그는 누중된 기억의 영역과 동기화하며, 지역 구성원들의 내면적 정동, 그 흔적을 작금의 현상으로 집결시킨다. 작가의 맥락에서 예술은 단순한 현실 모방의 피상이나 표면의 단계를 넘어, 비로소 실재의 단계로 우리를 진입하게 하는 적극적인 수행의 양식으로 승화한다. 이를 통해 그는 사회의 성립에서 은폐된 타자의 음성을 예술의 형식을 매개로 현재화한다. 그렇게 최원규는 관습적으로 편성된 소수의 지위를 직접 발화의 형태로 행할 수 있도록 예술을 전개하면서도, 그와 연관해 또한 예술이 당대의 제 위치를 합당한 무엇으로 갱신할 것을 촉구한다. 공존의 감각을 동시대에 회복하기 위해 예술이 진정으로 어떠한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 그것에 대한 의지의 표명으로 작가의 작업은 분명 읽힐 수도 있겠다.
장진택(독립 기획자, 동시대 미술 연구자)
A Low Whisper-Making Film
Lower Whispering
Installation simulati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