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1-박창영-2-DSC06815.JPG

OBLIVION,IMPRINTED 2021~

망각의 각인

살아있기 위한 가장 근원적인 물리적 행위인 “숨”,

하지만 우리는 그 “숨” 의 행위를 인식하지 못하고 망각한 채 살아갑니다.

사회가 하나의 유기체라면 그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는 개인은 그 사회를 기능하고

성장하게 하는 들숨과 날숨입니다.

다양한 숨을 찾아가는 작가의 예술 행위 속에서 ​창작자로서 살아가는

나의 존재 또한 확인하고자 합니다.

-작가노트 중에서-

 

 

“우리의 삶은 어떻게 기억되는가”

 

이번 전시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궤적을 찾아 시각 언어로 풀어 내는 최원규의 “숨”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에 있는 프로젝트이다.

대구 예술 발전소의 “대구 리서치 프로젝트” 로 선정되어 2021년 4월부터 이어온 이 프로젝트는 대구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의 삶을 추적하고 각각의 시간이 담겨 있는 오브제를 수집하여 설치미술의 형태로 선보인다.

대구 예술 발전소 주 전시장에서 선보일 전시의 타이틀은 [Oblivion: Imprinted – 망각의 각인]으로

“망각”될 역사와 “망각”되어지고 있는 주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현재의 대구를 만든 중, 장년층의 역사를 인터뷰하는 것을 시작으로 그들의 생활 공간에서 수집한 바닥재에 각각의 역사를 각인 함으로서 가까운 미래에 사라질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Oblivion; Imprinted-망각의 각인], 누군가의 현재를 비추었던 거울을 수집하여 프로젝션을 통해 존재의 메시지를 투영하는 [Oblivion; reflected-망각의 투영]는 서로 독립된 작업으로 보이나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는 엄연히 ‘존재하는 삶’ 대한 이야기로 연결되어 있다.

매일을 스쳐지나는 주변의 삶들, 그러나 드러나지 않아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외면하려 하는 주변부의 삶을 기억 함으로서 다시, 삶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것은 곧 “나의 삶은 어떻게 기억되고자 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나”는 “우리” 안의 “나”이며, “우리”의 존재를 잊는 순간 “나”의 존재도 희미해진다.

"Breath", the most fundamental physical activity to be alive.
However, we live without recognizing the act of "breath" and forgetting it.
If society is an organism, the individual who lives every day in it is an inhalation and exhalation

that functions and grows that society.
I would also like to confirm my existence as a creator in the artistic activities of seeking various breaths.
- From the artist note. -

 

 

"How can our lives be remembered?"

This exhibition is an extension of Choi Won-gyu's "Breath" project, which finds various life trajectories living in the contemporary era and unravels them in visual language.
The project, which has been selected as the "Daegu Research Project" by the [Daegu Art factory] and has been since April 2021, tracks the lives of citizens living in Daegu's past and present, collects objects containing each time, and presents them in the form of installation art.

The exhibition will be presented at the main exhibition hall of the [Daegu Art factory] in January 2022. And The title of the exhibition is [Oblivion: Imprinted ] talking about the history to be "forgotten" and the lives around it.
Starting with interviewing the history of middle-aged and elderly people, making Daegu today [Oblivion; Imprinted] to remember history that will disappear in the near future by imprinting each history on floor materials collected in their living spaces, and projecting a mirror that reflects someone's present.

I would like to talk about the meaning of life again by remembering the lives around me that pass by every day, but those around me who are not aware of it or try to ignore it.

This means, "How does my life want to be remembered?" It is also a story about.

"I" is "me" in "we", and the moment we forget the existence of "we", the existence of "me" also fades

Oblivion, Imprinted  [ 망각의 각인 ]  2021~
수집한 장판, 이야기, 레진, 와이어, 스틸패널  / 가변설치

망각의 각인 - 정순자, 대구

​정순자씨의 집 안방에서 수집한 장판,이야기,와이어,스틸패널 160X280cm / 2021

Oblivion;Imprinted - Jung Soonja

Floorboard collected from Soonja's house, story, wire, steel panel
160X280cm / 2021

정 순 자 칠십 구세

 

 

“맞기도 많이 맞았어.

 

깡깡이가 너무 힘들어서

좀 더 편하게 살까 해서

대구까지 시집왔는데,

우는 날이 더 많았어.

 

남편 먼저 보내고

애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

 

조그만 집이라도

내가 편하고

여기 죽 있다가 죽는가 했는데,

 

암튼 여기서 애들 다 키웠는데,

연락도 안해.

 

몸이나 성한가 몰라.”

 

 

 

2021. 05. 24

 

평리동 키낮은 주택가를 따라 걷다가

허리도 펴지 못하는 몸으로

무거운 장판을 돌돌 말고 있는

정순자씨를 만났다.

 

부산에서 깡깡이 일을 하다가

남편을 만나 대구로 올라온 순자씨는

42세에 이곳 평리동에 작은 집을 하나 샀다.

 

재개발 되기 전에 집을 정리 중이라던 아지매는

이제 곧 허물어질 집인 데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난다며

무거운 장판을 걷어 내어

마지막을 지내고 팠던 정든 집을 청소하고

보름 후에 그 어느 곳으로 떠난다 했다.

 

 

 

 

깡깡이 아지매

배가 수리를 위해 선착장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이 녹을 제거 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로프에 매달려 망치로 녹 제거 작업을 하였는데, 망치질 할 때 나는 소리 때문에 “깡깡이” 라 했다. 고된 노동이었지만 부산의 생활력 강한 여성들이 이 작업을 도맡아 했고, 이 여성들은 “깡깡이 아지매” 라고 불렸다

Jung Soonja 79y  Daegu

 

 

"I was beaten a lot by my husband.

It's so hard to work “kkang kkang-e”
I got married in Daegu to live more comfortably,
But there were more days when I cried.

After my husband died,

It was so hard to raise my children all by myself

Even if it's a small house, it's comfortable for me
I wanted to live here until I died

Anyway, I raised all the kids here,

but they don't even contact me anymore.

Just want my children to be healthy."

 


2021. 05. 24


Walking along a single-story residential area in Pyeongri-dong,
I met Jeong Soon-ja, who was rolling around a heavy floorboard with a body that couldn't even straighten her back.

She worked as a “Kkang kkang-e Ajime” in Busan, and after meeting her husband and moving to Daegu, she bought a small house here in Pyeongri-dong at the age of 42.

Soon-ja, who said she was organizing the house before it was developed, said she was going to clean up and leave even though it was a house that would soon be torn down, cleaned the heavy floorboards, cleaned the affectionate house she had dug after the end of her life, and left somewhere 15 days later.



Kkang kkang-e Ajime(ma’am)

When a ship comes into the dock for repairs, the first thing to do is to remove the rust from the ship. In the past, rust was removed by hanging from ropes with a hammer, but the sound of the hammer was called " Kkang kkang-e " because of the sound. It was hard work, but women with strong living power in Busan took over the task, and they were called " Kkang kkang-e Ajime "

망각의 각인 - 박창영, 대구

​박창영씨의 집에서 수집한 장판,이야기,와이어,스틸패널 165X750cm / 2021

Oblivion;Imprinted - Park Changyoung

Floorboard collected from Park's house, story, wire, steel panel
165X750cm / 2021

박 창 영  칠십 사세

 

 

“참 좋은 시절이 많았는데

언제 그런 날이 다시 올까 모르겠네

후회 되는건 없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니까

그저 자식들한테 더 해주지 못한 게 후회라면 후회지”

 

 

 

2021.10. 03

 

가로등이 막 꺼져 가던 이른 새벽

공원 화장실 앞에 불 켜진 택시를 세워 놓고 담배를 피던 창영씨에게

타도 되는지 묻고는 조금 비껴 서서 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그가 털어낸 불똥이 어스름한 새벽 축축한 바닥에 떨어질 때,

몇 번 태우지 못한 담배를 끄고는 택시에 올랐다.

 

일찍부터 어디에 가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몇 마디를 이어 갔고

작품 설치 차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탄다고 말에

 

미술을 전공했던 둘째가 살아있으면

꼭 나와 비슷한 나이일 것 같다는 말을 시작으로

창영씨의 지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아직도 그 날들을 기억한다.

 

울산에서 간단한 짐 꾸러미를 지고 도착했던 터미널의 새벽 공기와

 

하루를 쉬지 않고 택시를 몰아 장만 했던 산격동의 집 대문을 넘던 날

 

어느 죽일 놈의 인간 때문에 돌아오지 못한

둘째 아들을 만나러 달려 가던

2003년의 그날 아침,

유난히도 많았던 신호등의 깜빡 거림과,

 

마지막이 아닌 걸 알면서도 첫째에게 내어주려 마음 먹고 펼쳐 본

적금 통장에 빼곡히 찍혀 있던 그 숫자들.

 

그의 차 안에는 이제는 보지 못할 둘째의 어린 모습과

 

연락이 잘 닿지 않는 첫째의 가족 사진

 

그리고 3 년 전 먼저 떠난 부인과 처음으로 여행했던

 

제주도의 성산 일출봉에서 찍은 사진이 오밀 조밀 붙어 있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Park Changyoung 74y  Daegu

 

 

"There were a lot of good times."
I don't know when that day will come again
I don't regret anything. I worked really hard
If I regret not being able to do more for my children,

I regret it."



2021 10 03

Early in the morning, when the streetlights were about to go out,
I stopped a taxi with a light on in front of the park's bathroom and asked Chang-young, who was smoking, if I could get in the taxi, and I deflected a little and took out a cigarette.

When the cigarette firestorm he brushed off fell to the dusky dawn damp floor,I put out a cigarette that I hadn't burnt a few times and got into a taxi.

He asked where he was going early on, and we went on to say a few words starting with that.
I said I was going to take the train to Seoul to install the work,
He said that if his second child, who majored in art, was alive, he would be about the same age as me.
And I could hear Chang-young's past story.

He still remembers those days.

The early morning air at the terminal where he arrived with a simple package of luggage from Ulsan,

On the day he crossed the gate of the house in Sangyeok-dong, where he bought a taxi without a day's rest,

And that morning in 2003, when he was running to see his second son, who couldn't come back home because of some, there was an extraordinary amount of blinking of traffic lights,

And the numbers that were written in his savings account. even though he knew it wasn't the last time to give it to his first son,

In his car, the young side of the second child, which you will no longer see,
Family photo of the first son who can't be reached anymore
And a picture taken at ‘Ilchulbong Peak in Seongsan, Jeju Island’, where he traveled for the first time with his wife, who died three years ago.

was closely attached



Daegu Subway Incendiary disaster.  February 18, 2003 9:53 AM

망각의 각인 - 김강순, 대구

​김강순씨의 집에서 수집한 장판,이야기,와이어,스틸패널 250X165cm / 2021

Oblivion;Imprinted - Kim Kangsoon

Floorboard collected from Kim's house, story, wire, steel panel
250X150cm / 2021

김 강 순  팔 일

 

 

“아이고 고마워라

 정말 고마워”

 

 

2021. 09. 10

 

그녀는 한참을 불러도 대답이 없다.

매주 금요일 검은 봉지에 담긴 반찬을 건네 주러 가

항상 열려 있는 현관문에 서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강순씨의 뒷모습에

큰 소리로 불러도 항상 듣지 못했다.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다가가 방문 앞에 서서 인기척을 내어도

그녀의 어깨를 한번 툭 치기 전까지는 누가 오는지도 몰랐다.

 

매주 보는데도 나를 잘 알아보지 못하는 그녀는

항상 불편한 다리를 두 팔로 지탱해 일으켜 굳이 일어서서는

너무도 공손하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어쩌다 현관 문이 닫혀 있을 때는 신발장에 반찬 봉지를 두고 나오며

유선 전화로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지만

아무리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해도

연신 “어디시냐”는 말만 되풀이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서야 안심하며 전화를 끊었다.

 

12월의 세 째 주 금요일,

그녀 몫의 반찬 봉지가 빠졌다.

그토록 보고 싶다던 아들이 오랜 타지생활 끝에 돌아왔다고 했다.

 

빠졌던 한 봉지 대신 두 봉지를 다시 넣어 그녀의 집을 찾았다.

 

이제는 현관에서 소리 높여 그녀를 부르지 않는다.

 

여전히 문은 활짝 열려 있다.

Kim Kangsoon 81y  Daegu

 

 

"There were a lot of good times."
I don't know when that day will come again
I don't regret anything. I worked really hard
If I regret not being able to do more for my children,

I regret it."



2021 10 03

Early in the morning, when the streetlights were about to go out,
I stopped a taxi with a light on in front of the park's bathroom and asked Chang-young, who was smoking, if I could get in the taxi, and I deflected a little and took out a cigarette.

When the cigarette firestorm he brushed off fell to the dusky dawn damp floor,I put out a cigarette that I hadn't burnt a few times and got into a taxi.

He asked where he was going early on, and we went on to say a few words starting with that.
I said I was going to take the train to Seoul to install the work,
He said that if his second child, who majored in art, was alive, he would be about the same age as me.
And I could hear Chang-young's past story.

He still remembers those days.

The early morning air at the terminal where he arrived with a simple package of luggage from Ulsan,

On the day he crossed the gate of the house in Sangyeok-dong, where he bought a taxi without a day's rest,

And that morning in 2003, when he was running to see his second son, who couldn't come back home because of some, there was an extraordinary amount of blinking of traffic lights,

And the numbers that were written in his savings account. even though he knew it wasn't the last time to give it to his first son,

In his car, the young side of the second child, which you will no longer see,
Family photo of the first son who can't be reached anymore
And a picture taken at ‘Ilchulbong Peak in Seongsan, Jeju Island’, where he traveled for the first time with his wife, who died three years ago.

was closely attached



Daegu Subway Incendiary disaster.  February 18, 2003 9:53 AM

bottom of page